쉽게 이해하는 양자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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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해하는 양자 컴퓨터

1. 얽히고 겹쳐서 정답을 증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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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보다 수백~수천 배 빨리 연산하는 양자 컴퓨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무엇 인가’를 고전 컴퓨터와 비교하면서 설명했다.
 
 
친구에게 스무 고개 문제를 냈다. 친구의 첫 질문은 ‘동물입니까?’ 첫 답변은 ‘맞다.’ 두 번째 질문인 ‘육지에 삽니까?’엔 ‘아니’라고 답했다. ‘질문 3’은 ‘포유류입니까?’ ‘맞다.’ 친구는 정답을 맞혔다. ‘고래.’
문제가 너무 쉬워서 겨우 세 번째 고개에서 끝나버렸다. 정답이 불가사리, 마멋, 모시조개, 살쾡이 등이었다면 친구는 더 많이 질문해야 문제를 풀었을 터인데, 아쉽다. 그러나 이 스무고개 게임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맞다’와 ‘아니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의 반복이나 조합만으로 문제 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놀이엔 ‘맞다’와 ‘아니다’로 진행되는 나름의 ‘논리 단계’가 존재한다. ‘질문 1(동물인가?)’에 ‘맞다’, ‘질문 2(육지에 사는가)’에 ‘아니다’라고 답한 뒤 ‘질문 3’에 ‘맞다’라고 해야 정답(고래)에 이르게 된다. 이 같은 생각 흐름을 〈그림 1〉로 도식화했다.
인류는 이미 19세기부터 ‘생각의 흐름을 기계가 흉내 내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해왔다. 전기를 이용해 ‘맞다’와 ‘아니다’를 구분하는 기계적 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류가 흐르는 상태를 ‘맞다’,  ‘차단된 상태’를 ‘아니다’로 간주하면 된다. 지금부터는 기계의 입장에서 ‘맞다’는 1, ‘아니다’는 0으로 표시하자.
이제 우리는 기계에게 ‘고래 판별 능력’을 갖게 할 수 있다. 위의 질문 세 개에 대해 차례로 1(동물이다), 0(육지에 살지 않는다), 1(포유류다)로 답변하도록 만들면 된다.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면, 일단 질문 1엔 기계에 전류를 흘리고(1), 질문 2엔 차단한다(0). 그 결과 두 수치인 1과 0은 ‘1단계 논리연산자’로 입력된다. 논리연산자는 설계자가 원하는 조건(고래를 정답으로 유도하기)을 판별하도록 구성된 연산 규칙이다. 1단계 연산자는 1과 0이 차례로 들어오는 경우 1을 출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1과 질문 2의 답변인 1이 2단계 논리연산자로 입력된다. 2단계 연산자는 입력치가 모두 1일 때만 1(고래로 설정)을 출력한다. 이렇게 ‘고래 판별 기계’가 탄생했다. 전기로 작동하는 〈그림 1〉의 논리 회로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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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컴퓨터의 연산 방식

이런 방식의 ‘생각하는 기계’ 즉 컴퓨터를 만들려면, 사람이 기계의 논리회로에 자유자재로 전류를 흘리고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스위치 기능). 이를 위한 소재가 바로 트랜지스터다.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사각형의 작은 판에 집적하고 연결해서 더욱 정밀하게 기계의 생각 흐름을 제어하도록 한 장치를 반도체칩이라고 부른다.
이제 컴퓨터가 질문 세 개에 대해 어떤 식으로 작동하며 정답을 찾아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답을 찾아나가는 방법에서 고전 컴퓨터(양자 컴퓨터에 대비해 ‘고전’이라고 부른다)와 양자 컴퓨터는 확연히 다르다.
고전 컴퓨터는 2진수, 즉 1 혹은 0이라는 두 가지 값밖에 모른다. 연산 단위는 비트(bit)다. 어떤 정보(이미지·영상·음악·프로그램·웹사이트 구조 등)든 1과 0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고래 판별 문제의 경우 질문이 세 개다. 고전 컴퓨터는 각 질문에 대해 0(아니다) 혹은 1(맞다)로 답변할 수 있다. 〈그림 2〉를 보면, 컴퓨터가 0과 1을 조합해서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후 ‘상태’라고 부르겠다)의 개수는 모두 8개다. ‘000, 010, 011, 001, 100, 110, 101, 111.’
정답은 당연히 101(동물이고 육지 생물이 아니며 포유류인 고래)이다.
그러나 이 상태들은 모두 제각기 의미를 가진다. 000은 ‘동물이 아니고 육지에 살지 않으며 포유류도 아니’란 뜻이다. 011은 ‘동물이 아니지만 육지에 사는 포유류’다. 이런 존재가 있나?
컴퓨터는 자신이 조합해 만든 상태들이 의미론적으로 온당한지 여부엔 별 관심이 없다. 설계자가 제공한 논리연산자를 8가지 상태 모두에 대해 하나씩 순차적으로 적용해나갈 뿐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정답인 101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그림 2〉 참조).
지금까지 ‘고전 컴퓨터’가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았다. 그러나 너무 단순한 사례다. 논리연산자를 적용한 상태가 모두 8개에 지나지 않는다. 컴퓨터가 조합한 ‘경우의 수’가 너무 적다.
질문이 4개라면 경우의 수(상태)는 모두 몇 개였을까. 0000에서 1111까지 16개로 늘어난다. 10개의 질문일 때 경우의 수는 0000000000에서 1111111111까지 모두 1024개다. 스무고개니까 질문이 20개라면? 104만8576개다.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질문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경우의 수(상태)는 2배가 된다. 질문이 n개면 가능한 조합은 2ⁿ개. 이른바 ‘지수적 증가’다.
고전 컴퓨터는 이 상태들을 하나씩 차례로 탐색(연산)하며 정답을 찾는다. 고성능 GPU 덕분에 연산 속도가 꽤 빨라진 데다 수천~수만 대의 GPU를 연결(슈퍼 컴퓨터)해 연산능력을 고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탐색(연산)해야 하는 상태가 수십~수백조(14~15자릿수) 개 정도라면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京: 16자릿수), 해(垓: 20자릿수), 자(秭: 24 자릿수)를 넘어 경우의 수(상태)가 수십~수백 자릿수에 달하는 문제들(암호해독, 신약후보물질 탐색, 항만물류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지금 슈퍼 컴퓨터의 속도로도 수년에서 수백 년, 심지어 수백만 년이 걸릴 정도로 경우의 수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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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양자 컴퓨터의 아이디어를 제시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
 
고전 컴퓨터의 대안으로 노벨상 수상자인 저명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1980년대에 이미 양자 컴퓨터의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 있다. 이후 계속 관련 연구가 이어지면서 최근엔 양자 컴퓨터가 ‘양자 유용성(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슈퍼 컴퓨터와 협업 시스템을 이뤄 항만 물류 최적화 등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양자 컴퓨터를 이해하려면 먼저, 원자·전자·양성자·중성자 같은 극미한 입자들이 작용하는 ‘양자 세계’의 법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자 세계의 물리 법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실 세계’의 그것과 비교하면 마치 마법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꽤 예측 가능하다. 이 세상에서 컵은 컵이고, 물은 물이다. 사물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책상 위에 컵을 놓으면, 누가 밀지 않는 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일정한 힘으로 공을 던지면 특정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다가 정해진 곳에 떨어진다. 궤도와 낙하 장소는 물리학 공식들로 마치 예언하는 것처럼 맞힐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세계의 운동을 ‘고전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해왔다. 고전 컴퓨터도 이 세계관을 반영한다. 정보의 최소 단위인 비트(bit)는 언제나 0또는 1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다. 0이면 0이고 1이면 1이다. 모든 문제의 답은 ‘참(1)’/‘거짓(0)’으로 출력된다. 앞서 봤듯이 고전 컴퓨터는 질문(조건)에 따라 ‘경우의 수’만큼의 상태들을 가정하고 하나씩 차례대로 연산해나간다. 이 상태들은 각각 독립적이다. 다른 상태들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전자·양성자처럼 극도로 작은 입자들의 세계, 즉 ‘양자 세계’는 완전히 다른 물리 법칙(양자 현상)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중첩’이다. 양자 세계의 입자는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중첩). 어느 쪽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0으로 갈 수도 있고 1로 갈 수도 있다. 입자는 가능성의 물결이며 파동처럼 움직이는 성질을 지닌다.
둘째, ‘얽힘’이다. 입자들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전체 네트워크를 이루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얽힌 입자들은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인다. 입자들 사이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셋째, ‘간섭’이다. 입자는 1 방향으로든 0방향으로든 치달을 여러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 가능성들은 물결(파동)처럼 출렁인다. 이런 파동들이 겹칠 수 있다. 같은 방향의 파동이 겹친다면 해당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보강). 반대 방향의 파동이 겹치면 가능성 역시 상쇄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넷째, ‘측정’이다. 지금까지 봤듯이 양자 세계는 중첩, 얽힘, 간섭 등의 현상으로 인해 여러 가능성이 불확정적으로 출렁이는 공간이다. 양자 세계 구성원들의 정체성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누군가 이 세계를 ‘측정’하는 순간 그 가능성은 사라지고 입자는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0과 1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던 입자는 측정의 순간, 그 정체성이 0이나 1로 분명해진다. 어떤 입자가 0(혹은 1)으로 측정되면 이와 얽혀 있는 다른 입자의 상태도 동시에 결정된다. 장갑 한쪽을 분실했는데 오른쪽 장갑만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측정했다면) 그 순간 ‘잃어버린 것은 왼쪽 장갑’이란 정보가 확정된다. 설사 그 왼쪽 장갑을 수천㎞ 떨어진 미국 여행 중 분실했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관측 이후 입자와 전체 시스템은 중첩과 얽힘이라는 속성을 잃고 비로소 정체성을 얻는다.

마법 같은 양자의 세계

우리의 일상 세계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를 종교적 신비주의나 평행세계 같은 입증되지 않은 이론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양자 물리학의 법칙들은 이미 반도체·레이저·전자 현미경·MRI 같은 실용 기술들로 일부 입증되었다. 양자 컴퓨터는 중첩, 얽힘, 간섭 같은 양자 현상을 인위적으로 구현해 연산에 활용하려는 시도다.
고전 컴퓨터의 연산 단위가 비트라면, 양자 컴퓨터의 그것은 큐비트(qubit)다. 비트는 0아니면 1이다. 정체성이 뚜렷하다. 큐비트는 양자 세계의 입자처럼 0과 1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고전 컴퓨터의 비트는 반도체칩에 전압을 가하거나(1) 차단하는(0) 방식으로 생성된다. 전등 스위치나 마찬가지다. 큐비트는 생성하기가 매우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초전도 큐비트’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절연체의 양쪽에 두 개의 초전도체(전자가 저항 없이 흐르는)를 맞대고 전류를 흐르게 한다. 이 경우, 전자가 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를 쌍방향으로 왕복하게 된다. 한 방향을 1, 다른 방향을 0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0과 1을 동시에 품은’ 큐비트가 되는 셈이다. 이 ‘전도체 큐비트’들이 중첩, 얽힘, 간섭의 특성을 유지하도록 만들려면 외부와 격리된 극저온 공간에서 작동시켜야 한다.
이제 다시 ‘고래 알아맞히기’ 문제로 돌아가자. 고전 컴퓨터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자 컴퓨터에서도 설계자의 목표는 이 컴퓨터가 연산을 통해 정답인 101을 출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설계자는 우선 알고리즘을 통해 큐비트들의 중첩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든다. 고래 알아맞히기 게임이니까 큐비트들 역시 000부터 111에 이르는 8가지 상태를 구성한다. 그런데 상태들의 가능성을 동일하게 맞춘다. 그래야 ‘8개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은’ 중첩 조건이 충족된다. 상태들을 구성하는 0과 1은 비트와 달리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0은 1로 갈 가능성을, 1도 0으로 갈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000부터 111까지 8개 상태는 고전 컴퓨터 연산과 달리 ‘동시에 어렴풋이’ 존재할 뿐이다.
그다음엔 상태들을 특정한 조건에 따라 알고리즘으로 ‘얽’는다. 고전 컴퓨팅에서 8개 상태들은 각각 독립적이며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씩 탐색해야 한다. 그러나 양자 컴퓨팅에서 같은 가능성을 가진 8개의 중첩된 상태들은 얽히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간주된다. ‘한꺼번에’ 경우의 수 모두를 ‘고려’할 수 있는 조건이 이뤄졌다. 상태의 수가 8개가 아니라 100조 개나 수십경(17자릿수) 개, 수백자(25자릿수) 개라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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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큐비트로 이뤄진 상태들은 파도처럼 요동치므로 ‘간섭’ 현상을 알고리즘으로 조작해서 정답 상태인 101의 가능성은 보강하고 다른 상태들의 가능성은 상쇄해 약화시킬 수 있다. 이로써 측정 시점에선 101이 나올 확률이 압도적으로 커지게 된다.
정리하자면, 얽힘과 간섭을 조작해내 정답(101) 상태의 가능성이 증폭되도록 ‘양자 회로’를 설계한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단순히 빠른 연산 기계가 아니다. 연산의 개념 자체를 그것은 계산의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도구다. 중첩, 얽힘, 간섭 등 낯선 양자 세계의 원리를 활용함으로써, 고전 컴퓨터가 실용적인 시간과 비용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에 도전하고 있다. 물류 등 일부 영역에서는 고전적인 슈퍼 컴퓨터와의 협업 체제를 통해 성과를 거두는 등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앞으로 10~20년 내에 고전 컴퓨터보다 수백~수천, 심지어 수백만 배의 연산능력을 지닌 양자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해 “으스스하다(spooky)”라고 말한 바 있다.

2. 연산능력 끝판왕은 양자 컴퓨터

  • AI 발전 핵심은 연산능력,
미국 IBM이 개발한 ‘퀀텀 시스템 원(IBM Quantum System One)’이란 컴퓨터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이하 ‘고전 컴퓨터’)가 아니라 이른바 ‘양자 컴퓨터’다. 지금의 ‘슈퍼 컴퓨터’로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연산을 훨씬 빠른 속도로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대다수 시민들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양자 컴퓨터란 기술이 실험실을 뛰쳐나와 실용적 활용의 시작 단계에 이른 것이다.
연세대학교는 지난해 11월, 송도 국제캠퍼스에 설치한 양자 컴퓨터를 공개했다. 연세대로선 앞으로 형성될 국내 양자 기술 및 산업생태계에서 ‘허브’ 지위를 선도적으로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 사업을 주도해온 연세대 양자사업단의 단장인 정재호 의과대 외과학 교수를 만났다.
 
양자 컴퓨터가 뭔가? 현재 사용 중인 PC, 스마트폰, 태블릿(‘고전 컴퓨터’) 등과의 차이는?
비유로 설명하겠다. 당신이 하늘을 비행 중인 항공기를 자주 보고 싶다고 치자. 그 확률을 높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구름을 걷어내야 하나. 고성능 망원경을 갖고 다니면서 수시로 하늘을 바라볼까?
훨씬 좋은 방법이 있다. 비행기가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가라. 공항 근처다. 인천공항 부근에선 거의 5분에 한 대씩 볼 수 있다.
 
맞다. 그런데 비행기 보는 것과 컴퓨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나.
나는 당신에게 ‘비행기를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라는 문제를 제출한 셈이다. 그 정답을 찾기 위한 연산(계산)을 컴퓨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고전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비교해보자. 고전 컴퓨팅이라면 서울 강남, 신촌, 대구, 광주, 춘천 등 수많은 지역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방문(연산)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인천공항의 비행기 관측 확률이 가장 높다’는 정답을 찾게 된다.
양자 컴퓨팅에서는 수많은 지역의 비행기 관측 가능성을 한꺼번에(동시에) 고려한 뒤 인천공항의 확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한다. 양자 컴퓨팅은 ‘정답의 확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기술이다. 연산량이 비약적으로 줄어든다.
 
고전 컴퓨터로는 하나씩 차례로 탐색하는데 양자 컴퓨터는 한꺼번에 처리한다니 연산량이 매우 줄긴 하겠다. 그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중첩(superposition)’ 같은 ‘양자 세계(원자 및 이를 구성하는 전자, 양성자 등 아주 작은 입자들의 세계)’의 물리학적 현상에서 비롯된다. ‘중첩’ 등의 ‘양자 현상’들을 잘 활용해서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설계하면 연산 속도를 엄청나게 향상시킬 수 있다. 양자 세계는 극미(極微)하지만 너무나 큰 세상이기도 하다(편집자 주: 이후 10~20년 안으로 양자 컴퓨팅의 연산 속도가 특정 부문에서는 고전 컴퓨터보다 수백~수천 배, 심지어 수백만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 기술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연산이 필요한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이론적으로는, AI의 학습 및 가속화가 지금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촉진되어 훨씬 고성능의 AI가 출현할 것이다. 또한 양자 컴퓨팅은 이후 AI 발전에 따라 늘어날 에너지 소모와 비용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GPT-3(오픈AI가 2020년에 내놓은 대규모 언어모델. 챗지피티는 GPT 시리즈의 응용 프로그램)의 파라미터가 약 1750억 개였다. GPT-4의 그것은 수천억 개에서 수조 개로 추정된다(편집자 주: GPT 같은 언어모델은 ‘y = ax + b’ 같은 방정식의 집합이다. 여기서 a가 파라미터인데 한국어로는 ‘계수’라고 부른다. AI의 ‘학습’은 현실 세계의 데이터를 방정식에 대입해 연산하면서 파라미터를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조정해야 하는 파라미터가 수천억 개에서 수조 개에 이른다면 얼마나 많은 연산이 필요할까).
AI는 결국 연산이다. 이렇게 학습시킨 덕분에 요즘 우리가 쓰는 수준의 AI가 나온다. 데이터센터에서 수천, 수만 개의 GPU(AI의 학습에 주로 활용되는 고성능 연산장치로 전력 소모량이 크다)를 장기간 돌리며 연산한 결과다. 연산량이 늘어날수록 이에 필요한 전력 소비량도 증가한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인 ‘모두의 AI’를 실현하려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이다. 양자 컴퓨팅을 활용하면 AI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연산량과 이에 따른 전력 소비를 확 줄일 수 있다.
 
고전 컴퓨팅과 양자 컴퓨팅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양자 컴퓨터의 연산은 가역적이다(reversible computation). 연산의 결과인 출력값으로 입력값을 유추해낼 수 있다. 출력을 입력으로 되돌릴 수(reversible) 있다. 정보가 ‘보존’된다.
 
고전 컴퓨팅에선 가역적 연산이 불가능한가.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고전 컴퓨팅의 회로를 구성하는 ‘논리 연산자’ 중엔 ‘AND’라는 것이 있다. 입력 데이터가 둘 다 1일 때만 1을 출력한다. 두 입력값 중 하나라도 1이 아닌 (0, 0) (1, 0) (0, 1) 등에서는 0을 출력값으로 낸다. 이렇게 되면 출력값이 0으로 나온 경우, 우리는 입력값이 (0, 0)인지 (1, 0)인지 (0, 1)인지 알 수 없다. ‘정보 손실’ 현상이 발생한다.
 
그게 왜 중요한가?
정보가 손실되는 비가역적 연산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고전 컴퓨터’가 뜨거워지는(발열 현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보 손실’이다. ‘란다우어 원리’라고 부른다. 1비트의 정보가 지워질 때 발생하는 열까지 열역학적으로 계산이 되어 있다. ‘무어의 법칙’이 깨진 이유 중 하나도 이 발열 현상이다. 열이 나면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들어 반도체칩에 밀집시키는 작업이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고전 컴퓨터가 더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대안 중 하나를 양자 컴퓨터로 꼽을 수 있다.
 
획기적 연산속도’ ‘전력 소비 감소’ ‘컴퓨터라는 연산 기계의 발전 한계 극복’ 등에서 양자 컴퓨터의 의의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 기술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만큼 발전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지 않나.
현시점에서 양자 컴퓨터의 기술적 완성도는 100점 만점에 30~40점 정도로 본다. 그러나 실용적으로 활용 가능한 임계점은 이미 살짝 넘어섰다. 고전 컴퓨터와 협업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슈퍼 컴퓨터(수천, 수만 개의 GPU를 병렬로 연결해서 연산능력을 높인 고전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의 하이브리드로 HPC(고성능 컴퓨팅)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각각 잘하는 일을 맡기면 된다. 양자 컴퓨터는 고차원 확률분포 공간 탐색 같은 엄청난 규모의 복잡한 연산을 처리한다. 그 결과를 고전 컴퓨터가 받아 파라미터를 최적화한다. 양자 컴퓨터만 독자적으로 사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까진 양자 하드웨어의 성능 개선이 필요한데, 앞으로 10년 정도 더 걸릴 것이다.
 
실용 사례가 실제로 있나.
교통, 물류, 금융 등의 부문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론, ‘양자 어닐링 컴퓨터’로 로스앤젤레스 항구(LA 항구)의 물류를 ‘최적화’한 경우가 있다. 화물선들이 컨테이너를 내리는 한편 그 화물들을 싣고 나갈 수많은 트럭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트럭이 운송 대상 화물을 다른 컨테이너들에 막혀 빼내지 못한다면 적체 현상이 발생한다. LA항의 경우, 슈퍼 컴퓨터로 물류 최적화를 시도해봤는데 ‘경우의 수’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실용적인 시간 내에 최적 경로를 출력하지 못했다. 그래서 디웨이브 사(D-Wave Systems)에서 만든 양자 어닐링 컴퓨터를 도입했는데, 화물을 빼는 시간이 며칠에서 몇 시간으로 줄어들었다(편집자 주: 항구의 물류 최적화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예컨대 ‘하루 100척 이상의 선박들을 어느 부두에서 맞이하고 보낼지’ ‘선박에서 1만여 컨테이너를 어떤 순서로 내려 어디에 배치할지’ ‘수백 대에 이르는 트럭의 출입 순서 및 하역 대상 컨테이너에 이르는 경로를 어떻게 설정할지’ 등 서로 연결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최적화’해서 물류를 원활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에 크레인이나 인력 배치, 창고 사용, 통관, 날씨 등 다른 제약 조건까지 고려하면, ‘경우의 수’가 수십 자리인 천문학적 규모에 이를 수 있다. 정재호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고전 컴퓨터는 ‘경우의 수’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검토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중첩’의 활용으로 모든 경우를 한꺼번에 고려해서 정답일 확률이 높은 해법을 찾아내므로 물류가 빨라진 셈이다).
 
양자 어닐링은 대단한 기술인 것 같다.
아니다. 양자 컴퓨팅에선 초보적 수준이다. 정교한 논리 회로 없이 큐비트(qubit : 양자 컴퓨팅에서 정보를 표현하고 처리하는 기본 단위)의 배열만으로 문제를 풀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도 LA항 물류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의사로서 양자 컴퓨팅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일단 신약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신약 한 종을 만들려면 평균 17년 동안 5조원 정도를 투입해야 한다. 성공 확률은 4%에 불과하다. 어지간한 기업으로서는 덤벼들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다. 혈우병 치료제인 베크베즈라는 신약은, 주사기에 든 1~1.5cc의 약물을 투여받는 데 가격이 무려 46억원이다. 개발에 들어간 엄청난 돈과 시간이 반영된 가격이다. 그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것과 양자 컴퓨팅엔 어떤 관련성이 있나?
인체의 단백질 구조 규명은 물론 이에 기반한 신약 개발 단계에서도 ‘약물 후보’가 될 수 있는, (때로는 ‘경우의 수’가 수조 개인) 모든 화합물의 조합을 탐색(연산)해야 한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정확하고 빠른 연산 기술이 있다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양자 컴퓨팅 기술로 신약 개발 기간을 평균 1.7년, 비용도 5000억원으로 낮추게 된다면, 한국 제약사들도 도전할 만한 사업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많이 거론되는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 환경·생활습관·유전 등 개인별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질병 예방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패턴 분석’의 문제다. 두 당뇨병 환자가 같은 약물을 처방받았는데 한 명은 치유되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다면, 이는 두 사람의 패턴이 뭔가 다르다는 의미다. 패턴을 찾는 기술이 AI다. 이에 양자 컴퓨팅이 결합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개인 맞춤형 정밀 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연세대 국제캠퍼스에 IBM이 개발한 양자 컴퓨터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는데.
양자역학 관련 과학기술 전반을 고도화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양자 컴퓨터라는 도구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훈련시킬 수 있겠나. 오는 9월1일부터 ‘양자 정보 대학원’을 신설해서 이 부문의 석박사를 길러내기 시작한다. 양자 컴퓨팅으로 문제를 풀고 싶어 하는 산업체들에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예컨대 제약사 측이 ‘수천만 개의 화합물 가운데 신약으로 가능성 있는 것을 고르는 문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면, AI와 양자 컴퓨팅 기술의 활용으로 적절한 알고리즘을 개발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산학 협력을 이뤄낼 수 있다.
 
양자 컴퓨터 부문에서 한국이 너무 뒤처진 것 같다.
크게 낙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K-양자 컴퓨터를 반드시 만들자’ 같은 야심을 품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만 한국이 장차 양자 컴퓨터를 만든다 해도 그 시점에서 선도국들이 적어도 ‘양자 컴퓨터 제조’ 부문에선 더 앞서 나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패스트 팔로(신속한 따라잡기)’를 잘하는 나라다. 어떤 부문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 현명하게 결정하면 된다. 이쯤에서 항공산업의 비유를 들고 싶다. 대한항공은 비행기 제조업체가 아니지만 여객 및 화물 수송 서비스로 세계적 항공사로 부상했다. 어차피 비행기 제조업체는 많지 않다. 세계적으로도 보잉과 에어버스 정도다. 비행기를 직접 만들지 않아도 항공산업에서 주요 지위를 점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에서도 상용화된 하드웨어의 활용을 통해 산업적 가능성을 추구하면 된다. 양자 컴퓨팅으로 신약 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 한국의 제약산업은 성큼 성장할 것이다. 금융·화학·소재·반도체에서도 양자 컴퓨팅의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양자 컴퓨팅 전용 메모리칩을 개발하는 산업이 나타나고 이와 관련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도 발전할 것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면 10년 후쯤엔 한국도 양자 컴퓨팅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필요한 산업정책은?
알고리즘을 짜는 연구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풀고 싶어 하는지 알기 어렵다. 산업 측으로부터 ‘어떤 문제가 있는데 신기술로 해결할 수 없나’라고 구체적 이야기를 전달받아야 이에 상응하는 해법(알고리즘)을 구상할 수 있다. 산업정책은 양자 컴퓨팅과 관련된 ‘테스트 베드(기술이나 시스템·제품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플랫폼)’ ‘알고리즘 및 소프트웨어 개발센터’처럼 산업체와 연구자들이 함께 들어가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쪽으로 가면 좋겠다. 산업체에도 AI나 양자 컴퓨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잘 모르기 때문에 나서지 못한다. 그런 분들이 쭈뼛쭈뼛하면서도 나와서 다른 연구자들과 만나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한 일주일만 양자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준(準)전문가 수준이 되어 적어도 본인들의 문제가 양자 컴퓨팅의 도움이 필요한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갈 수 있다. 그들이 유튜브까지 찍을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보고 싶다.
  1. 7.17 시사 IN